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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전략론(과)
 


세계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그 해결 방안
  2006-09-27 00:07:52 댓글:(0)   조회:1618



임혁백(계간사상, 1994년 겨울)


1. "시장에 대한 갈채"


시장과 민주주의는 21세기를 준비하고 있는 오늘날 지구촌의 시대정신인 것처럼 보인다. 현재 남아프리카에서 보통평등선거권에 의한 흑인대통령의 선출을 보면서 우리는 세계적인 민주화의 물결이 정점에 이르고 있지 않았느냐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런데 민주화이후의 남유럽, 동구, 남미, 동아시아에서 예외없이 시장 지향적인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시도되고 있다. "민주주의, 시장, 국제화를 통한 근대화"는 탈사회주의시대의 동구에서뿐만 아니라 탈권위주의시대의 제3세계에서도 정치와 경제를 이끌어 가는 핵심적인 구호가 되고 있다.


불과 반세기전만 하더라도 시장에 기초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질서와 정치적 민주주의와의 결합에 대한 전망은 비관적인 것처럼 보였다. 20세기의 두 뛰어난 정치경제학자인 슘페터 (J. A. Schumpeter)와 폴라니(Karl Polanyi) 역시 자본주의적인 시장사회의 화려한 재기를 예측하지 못했다.『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슘페터는 궁극적으로 사회주의가 고전적인 부르주아 자본주의를 대체할 것이며 사회주의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도 있다고 예언하였다. 칼 폴라니는 19세기이후 100년간 지속되어온 시장사회가 제1차세계대전과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으로 위기를 맞게 되고, 시장을 "사회"의 통제하에 두려는 뉴딜적인 사회민주주의, 파시즘, 스탈린이즘(또는 일국사회주의)과 같은 다양한 반시장주의적 국가주의 대안이 등장했다는 주장을 했으나 다시금 시장이 갈채를 받는 시대가 도래할 것인지는 예견하지 못했다(Polanyi, 1944: 2).

슘페터와 폴라니의 예측과는 달리 파시즘은 일찍이 1945년에 제2차세계대전과 함께 종말을 고했고, 동구의 스탈린주의는 1989년의 정치적 대지진으로 폴란드에서 헝가리, 헝가리에서 동독으로, 동독에서 체코슬로바키아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루마니아로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1989년의 동구의 "현존 사회주의"의 몰락은 국가사회주의가 70년간의 실험을 마치고 역사로부터 퇴장을 강요당했다는 점에서 1917년의 혁명과 또다른 의미에서 세계사적인 혁명이었다(Daniel Chirot, 1989). 기실 사회주의 운동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하지 않는 이론에 기초한 이데올로기적 운동이었다. 현존사회주의는 현존하지 않는 역사적 가정에 바탕을 둔 운동이었기 때문에 실패를 자초할 수밖에 없었다. 현존사회주의는 사유재산제의 폐지와 국가계획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라는 잘못된 이론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현불가능한 이데올로기적 운동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관료적 권위주의"로 불리기도 했던 제3세계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도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민주화의 물결에 쓸려가버렸다. 민주화로 등장한 문민정부들은 군부가 시도한 관료적 권위주의가 전혀 관료적 합리성을 띠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이 물려받은 국가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플라톤의 철인왕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익을 챙기려는 지대국가였으며 지대국가의 존재는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를 지대를 추구하는 인간으로 변모시키고 말았다. 그 결과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강력한 이익집단간의 후원-수혜관계의 만연이었고 경제의 정체였다.


케인즈주의적인 사회민주주의도 시장지상주의적인 신보수주의의 공격 앞에 떨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국가의 간섭을 통해 고삐 풀린 시장의 횡포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하려하였으나 국가가 배출하는 다양한 비효율성으로 인해 경제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되었고 이로 인해 바로 그들이 보호하려던 국민들로부터 점차 외면 당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신생독립국이 탄생했을 때 그들이 내건 근대화의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적이었다. 민주주의는 민족적 전통, 문화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접두사가 붙은 민주주의였다. 선진 자본주의의 문화는 물질주의적익, 소비 지향적이며,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것으로 비판되었다. 시장은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로 거부되었고 사적 소유제는 착취적이라고 비판되었다. 사회주의 동구뿐만 아니라 제3세계에서도 선진 자본주의국가의 모델과는 다른 대안을 추구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동구의 현존 사회주의 모델은 말할 것도 없고 남미의 종속이론 역시 국제화를 거부하는 것이 핵심적 내용이었다. 그러나 동구 사회주의가 파산하고 남미의 군부가 퇴장하고 난 뒤 이들 모든 나라들에서 근대화란 자유민주주의, 소비문화, 시장자본주의와 동일시되고 있다(Przeworski et al., 1992).


이와 같이 반시장주의적인 대안이 점진적으로 소멸, 약화되면서 시장을 옹호하는 주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세지고 있다. 이제 후쿠야마(F. Fukuyama)와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서구자유주의에 대한 실현가능한 체계적 대안의 총체적 소진"과 시장민주주의의 최종적 승리를 선언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Fukuyama, 1989: 3-4). 폴라니가 지적한 바와 같이 19세기에 거대국제금융자본(haute finance)이 서구를 시장사회로 통합시켰던 것과 같이 현재 글로벌기업이 전세계를 시장사회로 통합해나가고 있다. 이제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기업의 확산으로 전세계적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질서가 구축되는 세계화시대가 된 것이다.


과연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시장과 민주주의가 마침내 행복한 결합을 이루어 냈는가? 이 글은 세계화로 지칭되고 있는 범지구적인 시장주의의 확산이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를 외연적으로 확산시키고 내포적으로 심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할 것인가를 탐색해보려는 한 시도이다.

 

2. 세계시간(world time): 정치의 민주화, 경제의 세계화(globalization)


21세기를 불과 6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세계시간은 어디에 와 있는가? 정치적 세계시간은 민주화이다. 1975년까지만 하더라도 지구상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었던 나라는 불과 30개국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후 전세계적인 규모로 확산되어온 민주화의 물결로 적어도 30개국이 새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이룩하였다. 이제 민주주의가 지구촌을 이끌어 가는 보편적 지배원리로 확고히 자리잡아가고 있다. 경제적 세계시간은 신자유주의적인 시장주의이다. 현재 지구촌 경제, 지구촌 정보체계의 등장은 신자유주의적인 시장주의를 범세계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마침내 시장주의는 고전적 부르주아 자본주의도 극복할 수 없었던 국경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1) 정치의 민주화


지금 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민주화의 물결에 버금가는 민주화의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총력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각국의 지배엘리트들은 전체 국민의 가능한 모든 인적 그리고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특권적인 하층계급의 동원을 위해서 각국의 지배엘리트들은 전쟁이후의 민주적 시민권의 부여라는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간의 전략적 타협의 결과로 제1차 세계대전이후 정치적 민주주의의 핵심인 보통평등선거권이 보편화되었고 민주주의가 마침내 서구에서 확고한 지배원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서구의 민주주의는 파시즘, 나치즘, 스탈린이즘과 같은 전체주의로의 역류를 경험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국가들의 연합세력의 승리로 끝나게 됨에 따라 민주주의가 범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호기를 맞이하였으나 권위주의적 산업화의 기치를 들고 권력을 무력으로 찬탈한 제3세계의 군부에 의해 많은 허약한 신생민주주의가 전복되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Huntington, 1993).


그러나 지금 세계는 헌팅톤이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제3의 민주화물결"(Democracy's Third Wave)로 반민주주의 세력은 전세계적으로 약화되고 있으며 민주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심각한 지정학적 또는 이데올로기적 경쟁자는 더 이상 존재하고 있지 않다. 마침내 민주주의자들은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으며 자유민주주의는 "유일하게 남은 완전하고 진정한 근대 사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Diamond and Plattner, 1993: ix).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사회의 건설을 꿈꾸던 "현존" 사회주의의 몰락은 체제경쟁에서의 패배로 일어난 것이지만, 제3세계의 군부권위주의의 퇴장은 태생적 결함에 의한 것이다. 군부권위주의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는 정치체제일 수밖에 없다. 권위주의체제는 권력장악의 불법적인 성격으로 인해 태생적인 정통성의 결함(birth defect in legitimacy)을 안고 있다. 권위주의체제는 태생적인 정통성의 결함을 메우기 위해 자연히 실적에 의한 정통성(legitimacy by performance)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실적에 의한 정통성은 권위주의체제로 하여금 자신의 무덤을 파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권위주의체제는 스스로 부과한 역사적 임무인 산업화를 수행하는데 성공하던가 실패하던가에 상관없이 퇴장의 압력을 받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국, 스페인, 대만과 같은 나라에서는 권위주의체제가 스스로 부과한 역사적 임무인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무용지물화"되고 산업화이후의 새로운 역사적 필요를 수행하는데 적합한 민주주의에 자리를 물려주어야만 했던 것이다("성공의 위기"). 반면에 남미의 관료적 권위주의정권들은 스스로 부과한 산업화의 "심화"(deepening)라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역사의 장에서 퇴장해야만 했던 것이다("실패의 위기"). 따라서 경제적 실패뿐만 아니라 경제적 성공도 권위주의체제의 수명을 연장시켜줄 수 없었으며 권위주의체제는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궁극적으로 운명이 예정되어있는 과도기적 한시체제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경제의 세계화


현재 자본, 생산, 경영, 시장, 노동, 정보, 기술이 국경을 넘어서 조직되고 있는 지구촌 경제시대를 맞이하고 있다(Castells, 1993: 18). 국민국가가 경제의 조직에 있어서 여전히 중요한 행위자임에는 틀림없으나 경제행위자들의 경제적 계산의 단위, 경제전략수립의 준거 틀이 일국경제가 아니게 되었다. 기업가, 노동자, 농민들이 국경을 넘어서 전세계적으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혁명과 생산기술의 혁명은 민족국가를 단위로 진행되어왔던 세계자본주의경제를 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현재 자본시장, 생산시장, 노동시장에서 국경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정보통신혁명은 글로벌금융시장의 출현을 가져와 통화에 대한 국가의 주권을 약화시키고 있다. 뉴욕, 런던, 도쿄의 국제금융시장의 규모는 미국과 일본 같은 초거대국가도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1989년의 경우 일일 세계금융시장의 거래규모는 6500억$로 이는 일일 세계무역거래의 40배이며, 미국, 일본, 영국의 중앙은행의 한 달간 외화보유고 합계의 두 배에 달한다(Held and McGrew, 1993: 269). 글로벌금융혁명은 통화, 증권, 선물, 채권시장에서 "지리의 종말"(end of geography)을 가져왔다. 금융상품은 24시간 연결되는 단일한 글로벌금융시장에서 컴퓨터 키에 의해서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검은 월요일"이라 불리는 1987년 10월의 월스트리트의 대란은 즉각 도쿄와 런던의 주식시장으로 파급되어 전세계의 금융시장을 대혼란에 빠뜨렸던 것이다. 돈이 조국을 모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정보통신혁명과 생산기술혁명은 또한 생산의 국제화를 촉진하고 있다. 이 두 혁명은 인적, 물적자원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해제하여 기업들로 하여금 국경을 넘어서 이윤이 나는 곳이면 어디서나 생산활동을 가능케 하였다. 그 결과 기업에 대한 국가의 통제는 갈수록 약화되고 생산에 있어서 국경의 개념은 점점 흐려져 가고 있다. 한국의 상품은 반드시 한국의 기업이 한국자본과 한국기술, 한국노동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상품이 아니게된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기업이 스위스은행에서 자본을 조달하여, 독일의 기술로, 일본의 기계를 도입하여 중국에 공장을 세워 중국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생산하는 것이 세계화시대의 생산방식이 되고 있다. 이제 생산과 기술의 국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제화된 생산과 기술을 결합하여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다국적 기업은 생산, 투자, 판매를 지구적 차원에서 재배치하는 전략을 마련하는데 부심하고 있다. 노동시장은 국경의 개념이 가장 뚜렷한 영역이었다. "발없는 자본"과는 달리 노동의 국제적 이동은 국경이라는 물리적 장벽을 극복해야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EU, NAFTA와 같은 지역경제통합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노동자들을 국경 내에 묶어놓을 수단이 사라져가고 있다.


생산의 영역에서만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촌 정보체계의 등장은 문화의 국경을 허물고 있다.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가 통신위성을 통해 전세계의 TV시청자들에게 동시에 직접 전달되고 있다. 걸프전의 생중계는 사담 후세인이라는 "악한"을 처치하기 위한 다국적 보안관의 조직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을 몰아낸 "민중의 힘"은 CNN의 생중계가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구의 현존사회주의를 붕괴시킨 것은 "전송혁명" (tele-revolution)이었다. 동구 현존 사회주의의 자급 자족적 체제는 서구로부터 유입되는 소비문화의 정보를 차단했을 때만 가능하였으나 전송혁명은 이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갈수록 민족문화의 순수성을 지키기가 점점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지구촌 정보체계의 등장으로 소비주의 이데올로기て문화, 소비주의 세계관을 지구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초국적 미디어기업과 광고기업들은 전세계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소비욕구를 창조하고 수요를 동질화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제 지구인들은 선택, 모방, 세뇌를 통해서 슈워제네거, 치어스, 펩시, 빅맥, 디즈니월드, 베네통과 같은 세계화된 상품을 소비하고 소비유형의 공유에 기초한 거시문화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Ferguson, 1992: 80).

 

3. 신자유주의자들의 개선가


세계화 또는 국제화가 민주주의를 외연적으로 확산시키고 내포적으로 심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이다. 신자유주의의 견해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막아왔던 최대의 장애물은 20세기에 만연한 국가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주의는 지나가고 있는 20세기에도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21세기에도 세계화의 확산으로 인해 쇠퇴할 것이고 개인의 자유에 바탕을 둔 자유 민주주의가 기존의 제1세계에서 제3세계로 확산될 것이라는 것이다.


1) 국가주의의 쇠퇴


신자유주의자들이 세계화시대에 민주주의에 대한 장미빛 전망을 내리고 있는 근거는 세계화가 경제적 비효율성과 정치적 억압의 근원이었던 국가주의를 마침내 지구촌으로부터 추방하고 시민사회를 해방할 것이라는데 있다. 세계화는 보호지대와 기득권의 온상이 되어온 국경의 장벽을 해체함으로써 주어진 영토 내에서 물리적 폭력의 사용을 합법적으로 독점해온 국가의 권력을 잠식하고 국경의 보호 하에 독점적 기득권을 누려온 이익집단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반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증대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하면 국가주의는 불의와 비효율의 근원이었다. 국가는 항상 플라톤의 철인왕이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영토 내에서 물리적 폭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국가의 강제능력으로 인해 국가는 사회의 어떤 행위자보다도 우월한 능력을 가진 자연독점자이다. 이러한 국가의 능력은 역설적으로 사회의 제 특수이익집단으로 하여금 국가를 침략하여 국가를 자신의 특수이익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켰다. 국가가 부의 축적의 원천이 되었을 때, 정치인, 관료, 기업엘리트, 노조 할 것 없이 모두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지대를 차지하려고 격렬히 경쟁하였다(지대추구사회). 선거는 전쟁이 되었고 부정부패가 만연하였다(Diamond, 1994: 9). 그 결과 국가가 보편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은 감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모든 물질적 자원을 통제하고 있을 때 정치 권력장악으로 발생하는 프리미엄이 너무 컸기 때문에 상호 신뢰와 규범의 공유에 의한 평화적 권력경쟁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권력장악이 가져다주는 스테이크가 클 때 집권자는 선거의 심판에 의해 권력을 내놓으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정치가 홉스적인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에서 권력을 내놓는다는 것은 그에게는 생명을 위협받는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Sartori, 1994).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쟁적 시장경제가 바로 이러한 지대추구사회를 근절시키고 정상적이고 평화적인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데 긴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자들은 반국가주의에 기초한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신생민주주의를 공고히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에 의하면 사회주의 동구와 자본주의 남미에서 민주화를 막아온 것은 국가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가에 의한 경제적 통제가 자유를 질식시키고 민주적 제도를 파괴하였다는 것이다.


2) "시장에 의한 정부"


세계화는 국가주권을 약화시키고 시장의 힘을 강화시킨다. 세계화 시대에 자본주의는 다른 생산양식과 교환양식을 정복하고 복속시키며 전세계에 걸쳐 자본주의적 가치와 헤게모니를 완성하고 있다(Ake, 1997: 285). 자연히 세계화는 자본주의적 지배양식을 정치와 사회적 영역에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지배양식을 정치와 사회적 영역에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정신은 경쟁성과 자기 책임성, 분권화이다.


세계화의 충격이 가해질 때, 경쟁의 정신은 모든 분야를 지배한다. 경쟁과 개방은 경제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경쟁의 정신이 정치영역에도 적용될 때, 독점적, 독과점적 권력구조는 와해되고 더 넓은 정치영역이 경쟁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던 정치인과 기업, 금융기관 간의 담합구조를 붕괴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시장에 의한 정부"(Government by the Market)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는 호기를 맞이하고 있다(Self, 1993).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에 의한 정부 하에서 이상적인 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시장은 이해 당사자 그때 그때마다 항상 투표하는 영원한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사회질서를 조직하는 데 있어서 시장의 원리를 강화할 때 경제적 재화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력에 있어서도 가장 효율적인 최적의 자원배분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과 민주주의는 소비자와 시민들에게 최대한의 개인적인 선택의 자유와 권력을 부여하는 동일한 조직원리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장경제 하에서 소비자주권이 작동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하에서는 인민주권이 작동하고 있다. 시장경제 하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생산자(판매자)는 소비자가 가장 원하는 상품을 제공하여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정치인은 투표로 계산되는 인민의 지지를 극대화하여야하고 인민의 지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인민이 집단적으로 원하는 정책을 제공하여야한다. 이와 같이 시장과 민주주의는 생산자와 소비자, 정치가와 유권자간의 분산적 결정에 의해 경제적 재화와 정치적 권력의 효율적 배분이 가능하다는 동일한 조직원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강화하는 관계에 있으며 시장사회의 확산은 민주주의를 확대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상품과 서비스의 시장이라면, 민주주의는 "아이디어의 시장"이다(Weitzman, 1993: 314). 신자유주의자들은 제3세계에서도 이제 "보이지 않는 손의 혁명"을 통해 다시 경제를 소생시키고 이념의 자유를 증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풍요의 경제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경제가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줌으로써 민주주의를 번성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풍요의 경제가 산출하는 정치문화의 토양 위에서 가장 잘 자라는 정치체제라는 것이다. 경제적 풍요가 관용, 화해, 타협을 선호하는 민주적 정치문화의 형성에 비옥한 토양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것이다. 고대 아테네의 폴리스(polis) 민주주의는 노예경제가 산출하는 풍요 위에서 경제적으로 자족적인 동질적 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시민들이 폴리스 내에서 그리고 폴리스를 통해서만 자기자신을 완성하고 명예롭게 살 수 있다"는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는 경제적 문제가 해결이 안된 시민들로부터는 나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 약한 국가를 가진 평등주의적인 민주주의로 정의되는 맑스의 사회주의도 결핍의 경제(economy of scarcity)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풍요의 경제(economy of abundance)하에서 나오는 것이다(Lipset, 1994: 2). 궁핍의 경제는 극심한 불평등과 정치적 억압을 낳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자궁 속에서 나온다는 맑스의 주장은 이러한 논리 위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현존사회주의가 풍요의 경제를 산출하는데 실패함으로써 몰락을 좌초했다는 사실은 맑스의 이론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주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이 민주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마침내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헌팅턴에 의하면 "경제적으로 시장경제는 명령경제보다도 경제성장을 지속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따라서 시장경제는 경제적 부를 창출하며 그 결과 민주주의의 하부구조를 제공하는 평등한 소득분배를 창출한다" 는 것이다(Huntington, 1984: 205).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지향적인 산업화를 추구해온 제3세계국가, 스페인 , 한국, 대만, 칠레 등지에서 민주화가 일어남으로써 자본주의 발전이 오히려 권위주의를 가져올 것이라는 "관료적 권위주의" 이론은 종말을 고하고 이제 국제화된 자본주의 모델의 범세계적 확산은 제2세계의 스탈린주의체제, 제3세계의 권위주의체제의 민주화를 계속 확대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Plattner, 1993: 31). 선진국과 제3세계국가간의 교역이 제3세계국가의 궁핍화현상을 가져올 것이라는 종속이론의 주장과는 반대로 자본주의의 범세계화가 신자유주의적인 누수효과를 가져와 제3세계에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물질적 기초를 강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세계화가 국내경제를 세계경제에 통합시킴으로써 경제발전을 촉진하고 시민들의 복지를 증진시킴으로써 민주주의의 유지와 확대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3) 전송민주주의(tele-democracy)


경제의 세계화를 가능케 한 기본 동력인 정보통신혁명은 정보의 획득과 처리에 있어서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해제시켰다. 정부와 대기업에 의해서 독점되어왔던 정보에 일반 시민들도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정보의 독점에서 나오는 권력이 줄어들게 됨으로써 국가의 시민사회에 대한 통제력은 줄어들게 되었다. 또한 정보통신혁명은 원거리에 있는 시민들간의 대화, 토론, 심의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심화에 기여하고 있다.


탈산업사회론자들은 정보통신혁명이 규격화, 전문화, 동시화, 집중화, 극대화, 중앙집권화를 특징으로 하는 산업사회를 붕괴시키고 독자적인 지역문화, 자립적인 지역사회, 분권화된 행정, 참여적인 정치문화, 선택범위의 확대, 인간중심의 사회, 참여 민주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탈산업사회로 이동을 촉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Sparks, 1994: 39-40). 개인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은 글로벌 매스미디어의 등장, 여행기회의 확산, 인구이동의 증가, 교육기회의 확대로 인해 더욱 증진될 것이다(Rosenau, 1992: 275). 완전경쟁시장의 이상이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의해서 달성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보통신의 세계화로 모든 시민들이 완벽한 정보를 가질 때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통신혁명은 또한 글로벌시민사회의 등장에도 기여하고 있다. 인권, 소수파보호, 선거감시, 학자와 지식인 교류를 위한 많은 비정부조직(NGO)과 비공식네트워크가 국제적으로 형성되어 민주화를 위한 새로운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글로벌시민사회는 냉전종결 이후 평화를 지키기 위해 민주화를 촉진해야한다는 "민주적 평화"(democratic peace) 구축의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Karl and Schmitter, 1994: 57-58). 세계화된 정보체계는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세계시간(world time)의 차이를 줄여줄 것이고 공간의 거리를 좁혀줄 것이다. 따라서 시장, 사회, 문화, 정치가 더욱 밀접하게 연관되고 제3세계의 독재자들이 정보를 차단하여 민주주의의 세계화 속에서 독재의 요새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Brunn and Leinbach, 1991). 티모시 가튼 애쉬(Timothy Garton Ash)에 의하면 실상 동구의 사회주의 체제를 붕괴시킨 것은 전송혁명이었다. 동구사회주의의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체제는 전송혁명이 요구하는 유연성에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붕괴를 자초하였다는 것이다(Ash, 1990). 40년 전에 마샬 맥루한이 이야기했던 '지구마을'(Planetary village)의 꿈이 이제는 '통신위성문명', '세계정보고속도로', '글로벌정보사회'라는 슬로건 하에 구체화되었고, 그 결과 한 나라의 시민들이 다른 나라의 시민들에게 어떻게 독재자를 몰아낼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는 시대가 되었다(Group of Lisbon, 1995: xiv). 다시 말하면, 정보통신혁명은 한 지역의 민주화를 다른 지역으로 확산, 시위, 전염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4)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


세계화는 한편으로는 초국가적 행위자를 등장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하위체계로의 권력이전(devolution of power)을 촉진시킨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지방도시가 전세계를 상대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되고 생산, 금융, 노동 시장의 세계화로 지방도시가 독자적으로 전세계를 상대로 경제와 문화교류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이점에서 세계화의 시대는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 global+localization)의 시대인 것이다. 국제화론자들은 오랫동안 중앙정부가 지방을 중앙집권적으로 통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발전을 지체시켰다고 주장한다. 먼저, 중앙정부가 지방을 지배함으로써 지반주민들의 문제를 주민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게 함으로써 주민자치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를 초래하였다. 둘째, 중앙정부의 지방지배는 지방정치를 관료화시켜 지방문제의 해결을 위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봉쇄하였다. 마지막으로 중앙집권화의 정치는 지방의 국제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모든 의사결정권이 중앙에 집중됨으로써 지방기업경영자들은 중앙정부와 통로를 열려하였지만 공장이 소재하고 있는 지역주민과 대화를 하려 하지 않았고, 지역주민 역시 모두 것을 중앙정부, 기업의 본사와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그러나 글로컬리제이션은 정치의 현지화를 촉진하고 있다. 국제화시대에 지방도시, 지방기업, 지방주민들은 반드시 수도에 있는 중앙정부나 대기업본사를 통해서 세계와 접촉해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중앙정부와 대기업본사가 지방과 세계를 연결해주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지방정부, 지방기업, 지방주민이 스스로 세계와의 통로를 열어야 하게 된 것이다. 지방정부 또는 지방기업의 대표가 해외에 나가서 세계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공장을 유치하고, 시장을 개척하며, 돈을 빌려와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글로컬리제이션은 정치의 현지화, 정치의 분권화를 촉진하고 있다. 세계화로 인해 전세계적인 공간재배치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지방자치정부들이 하부구조건설, 세금혜택, 노동자들의 양보 등을 패키지로 제공하여 기업을 유치하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기업유치운동은 지방정부에 권한이 위임되지 않았을 때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앙정부에 의한 획일적인 계획과 지시는 지방경제와 지방문화의 특성을 살릴 수 없게 한다. 정치의 분권화는 지방으로 하여금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비교우위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을 가능케 함으로써 지방의 국제경쟁력을 제고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컬리제이션은 오랫동안 잊혀져왔던 거대국가의 비효율성, 비민주성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국제화론자들은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라는 말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도시국가(폴리스)내에서의 주민의 자치로 꽃을 피웠으며, 서구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도 자치도시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도시의 자유가 혁신을 전파한 것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혁신은 중앙집권화되고 관료화된 정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치도시의 자유로운 공기 속에서 배태되는 것이다. 정치의 중앙집권화는 도시의 자유로운 공기를 숨막히게 만들뿐이라는 것이다.


"범세계적으로 생각하되 지방적으로 행동하라"는 구호와 "지방적으로 생각하되 범세계적으로 행동하라"는 구호가 공히 글로컬리제이션 시대의 정신이 되고있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주권국가의 영토 안에 갇힌 시민사회를 해방시켜 다양한 공간에서 자율적으로 개성을 꽃피우는 시민 순례자 (citizen-pilgrims)로 구성되는 글로벌 시민사회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4. 부정적 견해: 불균등한 세계화, 불평등한 민주주의


신자유주의자들의 장미빛 전망과는 반대로 세계화의 물결이 민주화의 물결을 역류시킬 수도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세계화는 공간적으로 이득을 불균등하게 배분함으로써 이제 갓피어나고 신생민주주의의 꽃을 사그라들게 할 위험이 있으며, 시민들간의 불평등을 심화시킴으로써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오던 서구민주주의를 불안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화의 불균등성, 불평등성은 세계화의 이득배분에서 배제된 자들로 하여금 종족주의, 인종주의, 종교적 근본주의와 같은 퇴행적 세계로 도피를 강요함으로써 문화적 다원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1) 글로벌 기업의 자율성과 국가주권의 약화


오랫동안 우리는 주어진 영토에 기반을 둔 국민국가가 인류의 기본적 정치조직이라는 가정 하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이러한 가정이 깨지고 있다. 세계화의 시대에 초국가적 통합운동과 종족적, 지방적 분리운동이 동시에 나타나 국민국가의 배타적 관할영역이 축소되고 있다. 한편으로 국민국가들의 융합운동이 나타나고 있다. EC, NAFTA, ASEAN과 같은 초국가적 조직은 경제의 초국적화에 대응하려는 국민국가들의 결집운동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구소련, 유고연방, 체코슬로바키아,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기존의 국민국가가 언어적, 종교적, 종족적 단위로 분해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집단적 정체성의 기초로서의 국민국가의 의미와 활력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Ake, 1997: 286).


세계화가 무역, 금융, 기술, 통화, 관광, 환경, 핵, 질병, 문화에 있어서 국경을 무너뜨림으로써 베스트팔리아조약 (1648년) 이래 국제질서의 기본 주체로 군림해 왔던 영토국가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Axtmann, 1997, 118). 지금 영토국가는 안과 밖, 위와 아래로부터 협공을 당하고 있다. 세계화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EU와 같은 초국가적 주권체가 나타나는가 하면 동시에 카탈로니아, 퀘벡, 크로아티아와 같은 자율성을 갖고 있는 미시적 지역이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의 국가는 신성로마제국과 교황과 같은 세계정부와 자율권과 자치권을 갖고 있는 자치도시, 자치영주로부터 협공을 받았던 중세국가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점에서 불(Hedley Bull)이 개념화한 "신중세시대"(new medievalism)에 있는지도 모른다(Bull, 1977).


베스트팔리아적인 국제체제하에서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국경 내에서 인민주권의 실현을 보장하는 정치체제이다. 주어진 영토 내에서 초국가나 국가하위조직이 주장하고 행사할 수 없는 강압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영토국가에 의해서 시민들의 권리가 보호되는 체제인 것이다. 국민국가는 오랫동안 시민들의 자유와 자아실현의 보장자였다. 국민국가는 시민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제적 복지, 신체적 안전, 문화적 정체성의 보장을 통하여 자신의 보편성과 정통성을 획득하고 유지해왔던 것이다. 인민주권은 국가주권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투표권을 통하여 자신의 충실한 대리인을 국가조직의 대표로 선출함으로써 국가로 하여금 시민들의 신체적 안전과 물질적 복지를 극대화하도록 강제한다는 의미에서의 인민주권(popular sovereignty)은 국가가 주어진 영토내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통제할 수 있는 강압수단을 독점하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세계화시대의 국가는 이미 주어진 영토 내에서 배타적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베스트팔리아체제의 국가가 아니다. 세계화시대에 국제체제는 국가, 지역, 초국적 조직과 기업들이 명확하게 설정된 위계체제를 갖추지 않은 채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따라서 국가는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Axtmann, 1977: 134). 그 결과 인민주권과 국가주권이 동시에 도전을 받고 있다. 다국적인 또는 초국적인 기업, 주식중개인, 국제통화, 증권거래인과 같은 글로벌한 행위자의 등장으로 생산과 투자결정이 국가와 인민의 통제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시대에 국민국가가 배타적으로 정책결정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들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정부가 자신의 시민들을 위하여 무엇이 옳고 적절한 것인가를 결정하는 권한이 글로벌 행위자에 의해 제한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행위자들은 국민국가와 시민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시민의 경제적 복지에 영향을 주는 생산과 투자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초국적인 글로벌 행위자들이 민주적 공간을 침략하고, 주권의 통제공간을 회피하는데 성공하고 있다(Axtmann, 1977: 131).


애당초 자본주의적 시장의 운동은 국제적이었다. 서구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긴 16세기"는 원거리 무역을 통해 자본주의적 교환관계를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서구에서 비서구지역으로 팽창시킨 세기였다. 자본주의의 논리는 성장과 이윤이었다. 그런데 성장과 이윤은 혁신과 팽창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국민국가는 시민들을 영토 내에 묶어두어야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논리는 투자가, 고용주, 판매자들로 하여금 이윤이 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도록 강요한다. 국민국가가 자신의 국경을 확대하는 것이 가능했을 때는 팽창주의적 자본주의와 팽창주의적 국민국가간의 공생이 가능하였다. 팽창주의적 자본주의와 팽창주의적 국민국가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서 그 잔인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국민국가의 영토확장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된 지금 팽창주의적 자본주의만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국가주권이 약화되면서 글로벌 자본주의는 기업가, 노동자, 농민들을 국경을 넘어서 전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세계화시대의 경쟁은 국가단위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부문, 산업, 기업, 단위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따라서 세계화의 물결은 지역간, 부문간, 사회집단간의 불평등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은 세계화의 제약에 의해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적인 경제적, 정치적 통합이 가속화되면서 거시 경제정책의 상당부분이 국민국가의 통제영역을 벗어난다면 국가가 국제화된 경쟁에서 낙오한 자들을 보호해 주고 사회적 긴장을 풀어줄 수단이 없게 되는 것이다. 국가주권의 약화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를 동반하고 있다.


세계화시대에 글로벌 행위자들이 투자, 생산, 분배, 고용, 매스 커뮤니케이션을 통제함으로써 인민들의 일상생활과 문화에 대해 정부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그들이 인민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강요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Fields, 1994: 15). 세계화로 인해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하에서 자본의 이동은 더욱 유동적이 되고 있다. 기업은 언제라도 투자환경이 좋은 곳으로 자본을 이동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선거에 의해 시민들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 심판을 받는 것은 정치인과 정부이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들이 구축한 국제적인 기업정보통신망(business communication networks)을 따라갈 수 없는 비효율적인 정보망을 가진 정부가 기업들을 감시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슈미터(P. Schmitter)의 경고를 경청해야한다. "원론적으로는, 선출된 국가지도자는 주권자이지만 실제로는 주권자가 초국적 기업의 결정, 국경을 넘나드는 아이디어와 인구의 이동, 그리고 이들이 이웃나라에 미치는 충격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되어 있다. 그 결과 국가지도자들이 자국의 시민들의 복지와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능력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Schmitter, 1994: 63). 인민주권이 법률상으로(de jure) 한정되고 사실상으로는(de facto) 기업가주권이 작동할 때, 인민들이 사회복지, 부의 재분배, 환경의 설계와 같은 자신들의 물질적 조건에 관한 결정을 부유한 엘리트와 외국투자가에 맡기는 결과를 낳을 위험이 있다(Pinkney, 1994: 2).


글로벌 자본주의사회 내에서는 견제와 균형이 없다. 글로벌 기업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제도나 구조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 글로벌 시장과 초국적 기업에 대한 국가의 자율성이 더욱 상대적이 되어 가고 있고 적극적 시민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달성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일찍이 린드블럼은 "완전한 민주주의로의 발전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사기업의 자율성"이라고 지적하였다(Lindblom, 1977, 356). 이제 거대기업의 자율성은 전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세계화를 저해하는 핵심적 장애요소가 될 것이다.


2) "발가벗은 임금님의 옷"

신자유주의자들이 세계화관은 이데올로기적이다. 세계화의 시대는 탈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아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의미하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맑시즘의 종언이고 국가주의의 종언이다. 그들은 사라진 이데올로기에 자유시장자본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마치 자유시장자본주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시장자본주의는 전세계를 단일시장에 통합시키려하는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실현불가능한 이데올로기이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자들의 "보이지 않는 손"은 현실에서는 존재하고 있지 않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최적의 자원배분은 완전경쟁시장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완전 경쟁시장이라는 조건은 불완전한 정보, 불완전한 시장(규모수익체증, 외부효과, 공공재)으로 인해 현실 세계에서는 조직할 수 없다. 스티글리츠(Stiglitz)의 말을 빌린다면, 발가벗은 임금님의 동화에서 임금님의 옷이 보이지 않는 것은 옷이 없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로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손이 없기 때문이다(Stiglitz, 1990).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완전 경쟁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의 가정을 가지고 자원배분의 처방을 내릴 때 경제적 효율성을 달성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자유주의적인 경제학의 이념에 근거해서 사회를 재조직하려할 때 그것은 사회주의운동과 같은 실현될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운동으로 끝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정치적으로 엄청난 폐해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3)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의 실상: 세계화의 불균등성, 비형평성


세계화비판론자들은 세계화란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범세계적 확산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범세계적 확산은 국가간, 지역간, 국민간의 불평등을 낳아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민주주의도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위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먼저 세계화의 이득이 지역적으로 불균등하게 배분되고 있기 때문에 새로이 등장한 동구와 남미의 신생민주주의의 물질적 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을 살펴보자. 세계화는 전세계적으로 균등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제의 세계화는 기본적으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간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동구나 시장경제의 요소를 강화하기 위한 개혁을 시도하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에까지 세계화의 이득이 확산되기는 아직 요원하다. 세계화는 종속이론가들의 불평을 잠재웠다. 세계화로 인해 선진자본주의 국가간의 교류가 증대하면서 제3세계의 직접착취 또는 불균등교환을 통한 간접착취가 선진자본주의의 축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세계화시대에 세계무역이 증대하고 있는 것은 기실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인 북미, 일본, 유럽연합간의 교역이 증대된 데 기인하고 있으며,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 탈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대부분의 고부가가치 생산은 여전히 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에 이 세 지역은 국제자본 이동의 80%를 차지한 반면 개발도상국들의 비중은 1970년대의 25%에서 19%로 떨어졌다(Petrella, 1996: 77). 1980년에 이 세 지역간의 수출은 전세계 수출의 31%를 차지했으나 1992년에는 43%로 높아졌으며, 이 세 지역 나라들의 수출 비중은 1980년의 54. 8%에서 1990년의 64. 0%로 상승하고, 수입비중은 1980년의 59. 5%에서 1990년의 63. 85로 상승하였다. 기업들간의 전략적 기술제휴의 91. 9%가 이 세 지역의 기업들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고부가가치 기술이동의 방향을 보여준다(Petrella, 1996: 77-79; Stallings and Streek, 1995: 73). 사실 경제의 세계화란 이 세지역 경제의 생산, 금융, 기술구조가 수렴하고 있다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Axtmann, 1994: 1). 거시경제적 현상의 동시화는 실상 이 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슷한 경기순환유형을 지칭할 뿐이다. 교역, 투자, 기술이전이 이 세 지역에 집중됨으로써 동구와 제3세계의 신생민주주의는 자본과 기술의 고갈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 종속이론가들의 예언과는 달리 제3세계국가들은 선진자본주의국가에 좀 더 "종속"되기를 애원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의 이득은 나눠주지 않으면서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에 신자유주의적인 경제개혁규범을 강요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처방의 핵심적 내용은 단기적으로는 정통적 안정화 조치를 취하면서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고 경제활동을 시장에 맡기는 방향으로의 경제의 구조적 재조정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개혁 처방은 남미의 신생민주주의 국가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이후시대의 동구에게도 예외없이 강요되고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 불리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처방은 신생민주주의국가들에게 안정화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하에 이윤동기 없이 방만하게 운영되어오던 국영기업을 민간에 매각하고, 대량실업의 위험이 존재하더라도 국가의 규모를 줄이고, 가난한 민중들에게 빈약하게나마 주어져왔던 건강, 주택, 사회보장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면서도, 국내시장을 외국의 글로벌자본에 개방할 것을 강요하였다. 신자유주의적인 워싱턴 컨센서스의 경제개혁처방은 선진 자본주의국가들과 신생민주주의간의 컨센서스로 마련된 것이 아니라 선진자본주의(그 중에서도 특히 국제 금융자본)간의 컨센서스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물론 동구와 남미의 파산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경쟁적 시장의 확립이 필요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의 해체를 통해서 달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경쟁을 통한 성장이 국가개입의 축소와 전면적인 사유재산권의 확립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신자유주의자의 처방은 증명이 되지 않았다. 모든 자본주의 경제에서 여전히 국가는 "시장의 실패"로 인한 자원의 비효울적 배분을 시정해 왔으며, 시장경쟁이 초래하는 분배적 형평성의 문제를 개선해 왔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사유화의 주장도 잘못된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사유화 주장은 사적소유권만이 경영자들로 하여금 이윤을 극대화하도록 강제하여 주인과 대리인의 문제로 발생하는 효율성의 상실을 제거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사적 영역 내에서도 고용주와 피고용인, 소유주와 경영자, 채권자와 기업가간에도 주인과 대리인의 문제는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공적소유제와 자본주의의 사적소유제 하에서 공히 주인과 대리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연성예산제약"(soft budget constraint)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발생시킨다면 완전한 자본주의적 소유권제도하에서만 시장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오스트리아학파와 같은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은 편협한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Bardhan and Roemer, 1992).


신자유주의적 개혁처방의 경제적 효과는 불투명하지만 그 정치적 파장은 발가벗은 현실로 등장한다. 신자유주의적 개혁처방에 의한 사유화, 탈규제, 안정화, 국가의 축소가 취해질 때, 그로 인한 결과는 생산자원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의 생존의 기회를 박탈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할 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의 결과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불평등, 실업, 사회적 안전망의 박탈로 나타날 것이다. 남미의 민영화의 주인은 국영기업의 주거래자였던 토착기업과 외국파트너로 나타나고 있으며, 동구의 사유화의 결과 모든 국민들이 국가의 재산을 골고루 나눠 가지기보다는 과거의 구공산당 관료를 기업가로 변신시키는 결과만을 빚었을 뿐이다. 타를로프스키(Tarlowski)의 표현을 빌린다면, 동구의 사유화는 아파라치키(Apparachiki: 당관료)를 안트르프르느츠기(Entreprenechiki: 당관료기업가)로 변신시켰을 뿐이다(Tarlowski, 1989). 반면에 러시아와 동구의 인민들은 하루아침에 국가에 의해 보호되어온 사회적 보호를 상실하고 자본주의적 자유의 바다 위에서 헤엄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바다 물은 차가웠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자들은 충격요법만이 자본주의 바다 위에서 살아남을 있는 처방이라고 회유하였다. 약은 쓸 수록 더 좋은 약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쓴 약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보호를 상실한 러시아사람들이 지리노프스키(Zhirinovski)와 같은 쇼비니스트적인 민족주의자(또는 파시스트)에 등을 기대려 하고 있다 (Fields, 1994: 9).


남미의 신생민주주의 국가의 사정도 동구의 신생민주주의국가 보다도 낳을 것이 없다. 남미의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이 채무를 지고 있는 국제금융자본과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의 강권에 의해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딪친 문제는 동구국가들과 질적으로 다른 문제가 아니었다. 남미에서 민영화, 탈규제화, 안정화조치를 통해 시장의 원리를 강화시켰을 때, 경쟁시장은 활력있고 효율적인 경제를 가져다줄 지는 모르나 이러한 시장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건너야하는 "눈물의 계곡"은 어떻게 건널 것인가에 대한 민주적 합의는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경쟁적 시장경제로의 구조조정은 단숨에 일어나지 않는다. 개혁은 장기화된 전환의 과정을 거치며 전환의 과정은 필수적으로 전환의 비용, 즉 단기적인 물질적 조건의 악화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 가격의 통제가 해제되었을 때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며, 탈규제와 사유화(민영화)로 경쟁원리가 강화되었을 때 노동과 자본의 실업(실업과 파산)이 증가하기 마련이다. 개혁의 최종적 결과가 모두에게 파레토우위적인 물질적 조건의 개선을 가져다 준다할지라도, 개혁조치로 인해 발생하는 일시적인 물질적 조건의 악화는 경제개혁 비용의 지불을 둘러싸고 사회집단간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고 그 갈등은 개혁과정 뿐만 아니라 신생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신생민주주의 지도자들이 "눈물의 계곡"을 넘는데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그들은 곧 기술관료적 해결책의 유혹에 빠지게된다. 그들은 지루하고 비생산적인 민주적 결정과정의 통로를 피해서 국민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포고령(decree)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려한다. 볼리비아의 빠즈 에스텐세로 정부나 페루의 후지모리정부는 포고령에 의해 정통적인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을 해치운 워싱턴 컨센서스의 우등생이다. 그러나 그 정치적 결과는 신생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드는 것이었다. 경제개혁을 포고령주의(decretismo)에 의존할수록 중요한 결정은 인민들이 선출한 대의기구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4년마다 인민들은 공정한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자신들의 의회대표를 선출하지만 자신들의 물질적 조건을 결정할 중요한 정책이 대통령궁 내에서 대통령과 그 주변의 기술관료들이 국민의 대표와의 협의와 조정과정을 생략한 채 이루어진다면 인민의 대의기구가 더이상 권력의 소재가 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오도넬(G. O'Donnell)이 개념화한 "위임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의 만연은 신생민주주의의 대의성을 약화시키고 정치의 희화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증대시킴으로써 신생민주주의의 기초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O'Donnell, 1994).


결국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제2세계, 제3세계로의 확산은 시장민주주의를 가져오기보다는 시장권위주의(Market Authoritarianism)로의 퇴행을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크다. 워싱턴 컨센서스가 컨센서스를 이루지 못한 것은 세계화와 민주화를 어떻게 동시에 추진할 것인가에 대한 처방이다. 세계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추진하기 위해서는 경쟁의 도입과 함께 경쟁에서 낙오한 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는데서 나오나, 그러한 피난처를 제공해줄 수 국가는 이미 약화되어있거나 존재하고 있지 않는 것이 동구와 남미의 시민들이 처한 딜레마이다.

자유자본주의가 마침내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선언되고 있는 시점에서 자유자본주의의 본고장인 영국, 미국, 캐나다의 앵글로색슨 민주주의의 기초는 약화되고 있다. 영국의 대처리즘(Thacherism), 미국의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로 대표되는 앵글로색슨 국가에서의 신보수주의운동은 1970년대이래 진행되어온 경제위기에 대처해서 시장을 강화하고 과부화된 국가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는 개혁운동이었다. 대처정부는 전후의 케인즈주의적 소득정책을 버리고 전전의 통화주의로 복귀하였고 케인즈적 복지국가를 해체하려하였으며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시도하였다. 대처정권보다 1년반 뒤에 등장한 레이건 정부는 존슨정부의 위대한 사회의 건설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뉴딜컨세서스(New Deal Consensus)를 붕괴시키고 수요중시경제학을 공급중시경제학(Supply Side Economics)으로 바꾸면서 감세, 탈규제, 복지지출의 삭감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의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나타난 영국과 미국의 신보수주의적 개혁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영국의 대처주의는 통화주의의 목표를 복지국가의 해체 위에서 달성하려하였으나 실제로 대처정부 하에서 복지지출은 더 늘어났다. 복지지출의 증가는 역설적으로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된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다. 시장경쟁에서 탈락하여 소득지원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의 수가 1979년의 300만에서 1989년의 490만 명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의 레이건 정부의 공급중시의 경제학은 기본적으로 감세를 통해 자본가들의 투자를 촉진한다는 것이었으나 자본가들은 세금의 감소로 생긴 여유자금을 투자로 돌리지 않고 과소비와 투기로 낭비하였다. 국가지출의 감소와 세금의 감면이 자본가의 투자증대를 가져오고 투자증대는 경제를 활성화시킴으로써 노동자들에게도 누수효과에 의한 부의 재분배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공급중시경제학의 처방은 실현되지 않았다.


경제적 평등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앵글로색슨 민주주의 국가들의 성적은 불량하다. 앵글로색슨 민주주의(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국가들 모두 하층 40%의 소득비중이 OECD평균을 하회하고 있으며 GDP에서 차지하는 사회보장혜택의 비중도 낮다(영국, 캐나다제외). 소득불평등은 높고 빈곤층의 비율은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빈곤층비율은 18.1%에 달하며 결손가정의 빈곤층율은 53.3%에 달한다. 이는 사회를 통합해온 틀을 약화시키고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초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어떤 민주주의도 좌절, 불의, 분열, 불평등에 의해 조성되는 긴장으로부터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앵글로색슨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신보수주의의 운동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빈곤층의 확대를 가져와 하나의 국민을 "두 국민, 하나는 부자, 다른 하나는 빈자"으로 분열시켰을 뿐이다. 빈곤의 증대, 부자와 빈자간의 격차의 확대, 부의 집중은 부자의 권력의 증대를 가져오게 된다. 그 결과, 대량의 실업을 발생하고, 그로 인해 빈곤, 범죄와 마약의 확산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하며 장기적으로는 생산성의 하락을 초래할 것이다. 이는 억압, 법과 질서의 강조, 부자와 주변화된 하층계급간의 사회적 분열의 가속을 초래할 것이다. 빈곤층의 확대는 한 국민을 "두개의 국민"을 갈라놓았을 뿐만 아니라, 한 도시를 두개의 도시로 갈라놓았다. 이제 미국의 부유층들은 가난, 마약, 범죄로 피폐해진 하층민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이 살고 있는 호화주택촌을 성벽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중국의 진시황이 흉노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던 것처럼 미국의 상류층들은 국경이 없는 세계에 살면서도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는 성벽을 쌓고 있는 것이다(Schrecker, 1994).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은 또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쉐보르스키 (A. Przeworski)의 견해에 의하면 세계화는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에 있어서의 국경의 개념을 무너뜨린 결과 일국자본주의 모델에 기초한 사회민주주의적 타협체제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Przeworski, 1991). 전후 유럽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복지민주주의로의 자체개혁을 단행함으로써 노동계급의 자본주의 착취제도에 대한 저항과 도전을 극복할 수 있었다. 복지국가가 사회보장, 실업보험, 상해보험, 가족수당, 노령보험 무상교육 등의 복지를 사회적 임금의 형태로 노동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시장의존도 또는 시장의존도를 감소시켰고, 그 결과 자본주의 시장의 횡포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노동자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약화시켰다. 노동자들을 시장의 횡포에 대해 무방비상태로 방임하는 시장민주주의와는 달리 복지민주주의는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계급갈등을 체제내화함으로써 노동자들은 민주주의(보통평등선거권)를 자본주의를 폐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고 자본가들은 그들의 경제적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서 권위주의를 불러들이지 않겠다는 타협을 가능케 한 것이다. 복지민주주의 하에서 계급타협은 전략적으로 이해된다. 복지민주주의 하에서 노동의 탈상품화가 진전됨으로써 자본주의 내에서도 사회주의 하에서 가능한 복지를 얻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노동자들은 굳이 고통을 수반하는 전환의 비용을 감수하면서 사회주의혁명을 선택하지 않았으며, 복지국가의 유지에 드는 비용이 권위주의를 불러들여서 노동자들을 억압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싸게 먹힌다는 계산이 나왔을 때 자본가들은 복지민주주의로의 양보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물결은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적인 계급타협의 기초를 붕괴시키고 있다. 신보수주의적 세계화의 이데올로기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기존의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해왔던 유럽대륙의 복지국가도 해체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 상품, 서비스, 노동 모두가 국제경쟁에 노출됨으로써 국경 내에서 국가가 탈상품화정책을 통해 시장의 횡포로부터 노동자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준다는 사회민주주의적 대안이 갈 수록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사실 사회민주주의적 계급타협은 조합주의적(corporatist)인 중앙집중식 노사협상제도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앙집중식 노사협상제도는 노동시장의 국경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국경의 경계 내에 갇힌 노동자들을 중앙집권화된 노조가 독점적으로 대표하여 자본가와 대등한 위치에서 노동자들의 이익의 실현을 위한 협상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로 일국 노동시장이 무너진 시점에서 중앙집권적 노조가 자본가(또는 자본가단체)와 대등한 위치를 유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노동을 포함한 모든 상품이 국제적으로 교역된다면 노조는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공공부문 외에는 독점적 노동공급자의 힘을 빌려서 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이 노동력을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자본을 언제 어디서나 이동할 수 있는 상황에서 조직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들의 협상능력은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국가적 기업은 중앙집권적 노조의 노동공급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언제라도 자신의 투자를 철수할 수 있다고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초국가기업은 조직노동자들을 협상테이블의 상대로 여기기보다는 파괴되어야할 시대착오적인 장애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시대에 기업에 의한 노조파괴로 조직노동자들의 수는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둘째로, 경제의 세계화로 인해 유연적 생산체제의 확립이 시대적 구호로 등장하면서 기업경영자들은 기업 내에서 노동자들을 유연하게 재배치하려 할뿐만 아니라(기능적 유연화), 파트타임 노동자의 고용, 고용안전 규정의 폐기, 하도급 등의 수단을 통해 노동자의 규모를 신축적으로 조정하고(수적 유연화), 임금인상 양보, 이중임금제, 성과급의 도입을 통해 임금을 신축적으로 조정하려할 것이다(보수유연화). 세계화시대의 기업가들은 이제 더 낮은 임금을 받고도 기꺼이 일할 수 있는 적은 규모의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생산해야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Lean Production). 유연적 생산체제를 조직하려는 기업가들의 운동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사적임금의 감축과 대량실업의 위험에 떨게 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인 GE만 하더라도 1981년이래 20만명 이상의 노동자를 감축했다. 그러나 GE의 순소득은 세배로 증가하였고 시장가치는 676억불이나 증가하였다(Fortune, 128, December 13, 1993). 해고의 뉴스가 공표되었을 때 그 기업의 주식은 상승한다.


또한 세계화시대의 생산방식은 컴퓨터화된 생산공정의 자동화를 가능케 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소외를 가속화시키고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는 "컴퓨터화된 테일러리즘"을 낳을 위험성이 있다. 오페(C. Offe)는 이러한 국제화시대의 새로운 생산방식은 노동자들에게 집단적 정체성(collective identity)의 문제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노동의 유연화는 숙련화된 핵심노동자와 비숙련, 반실업상태의 주변부 노동자간의 분절현상을 가속화시킨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포괄적인 경제적 이익, 소속단체, 문화적 가치, 생활양식의 공통성"이 해체되면서 노동자들 간의 집단적 유대는 사라지고 있다(Offe, 1987: 527). 동질적 노동자의 개념이 와해되면서 "대규모의 의식화되고 잘 조직된 노동자들의 집단 또는 계급조직이 표의 힘을 빌려 사회개혁과 광범위한 사회정책을 위한 전략"을 추구한다는 마샬(T. H. Marshall)의 산업시민권(industrial citizenship)의 가정을 무너뜨려버렸다.


마지막으로 유럽의 경제통합과정을 살펴보면 단일 유로시장의 형성, 유로통화의 통합, 초국적기업간의 통합, 유로기업가단체의 연합은 진행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는 약화되고 있다. 슈미터와 스트릭에 의하면 유로코포라티즘의 전망은 밝지 않다. 글로벌기업들이 국경을 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는 반면에 노동자들은 그들의 이익을 보호할 국제적인 연대기구를 마련할 수단이 없는 것이다. 슈미터와 스트릭에 의하면 일국 코포라티즘이 초국적 다원주의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 단일 유로시장시대의 이익집단정치의 기본 특징이라는 것이다(Schmitter and Streek, 1991).


요약하자면, 세계화를 가져온 과학기술혁명의 이득과 비용은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나눠지지 않고 계급적, 계층적으로 차등배분되고 있다. 신보수주의의 물결 하에 거대기업과 기업가들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지고 있다. 거대기업은 친기업가적인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뒷받침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이 그들의 정치자금을 기업의 기부와 헌금에 의존함으로써 기업의 집행부가 의회와 관료를 지배하는 현상을 낳았으며 기업들은 미디어 산업의 소유권을 장악함으로써 신보수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할 핵심 수단을 얻게 된 것이다(Trent, 1994). 반면에, 노동자들은 세계화시대의 기본 덕목인 국제경쟁력 제고라는 제약에 직면하여 자신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을 상실하고 계급해체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생산조직의 합리화라는 이름 하에 노동계급의 재편성이 추진됨으로써 지식노동자로 상향이동할 수 없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파트타임 노동자 또는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강제적 해체는 민주주의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틀 내에서 지킬 수 있는 보호장치를 상실했을 때, 그들이 여전히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 살기를 동의할 것인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노동절약적인 신기술의 도입으로 양산된 주변부적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은 사회평화를 위협하는 중심세력이 될지 모른다. 19세기에 "악마와 같은 공장"(satanic mills)에 저항하였던 노동계급을 자본주의사회에 통합시켰던 20세기적 성과를 무산시키고 노동자들을 다시금 "위험한 계급"(classe dangereux)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운동은 현재 전개되고 있는 민주화의 물결을 역류시킬 위험이 있다. 민주화를 역류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집단적 행위자로서 새로운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협상당사자로 참가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할 것이다. 말하자면, 노동과 자본간에 다양한 수준에서의 타협과 협약을 통해 새로운 생산체제로의 부드러운 이행이 가능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4) "문명의 충돌"

세계화의 이득이 국가, 종족, 지역, 부문간에 불평등하게 배분될 때 그 결과는 민주주의의 물질적 기초를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화적 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하고 있다. 세계화가 민주적인 지구촌 문화를 형성하기보다는 세계화의 대열에서 이탈한 자들이 인종, 종교, 언어에 기반한 특수문화를 번성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구소련 지역의 변방, 발칸지역, 아프리카, 인도네시아에서는 종족, 인종, 종교적 차이로 인한 유혈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헌팅턴은 새로운 종족, 지역, 종교적 분쟁을 "문명의 충돌"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하고 있지만, 이를 문화론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종족, 지역, 종교적 갈등의 근저에는 세계화시대에 종족, 지역, 종교집단 간에 경제적 불평등이 증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세계경제의 대열에서 이탈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해줄 피난처를 찾고자 한다. 그들은 종족, 고향, 카스트, 세대, 종교에의 향수를 못 버리고 그곳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려한다. 시장의 폭력에 대항하여 그들은 반시장주의적이고, 과거지향적, 그리고 지방적인데서 그들의 피난처를 발견하려한다. 그러나 이러한 종족적 근본주의와 종족적 민족주의는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다양한 대안의 표출과 조직이 관용될 뿐만 아니라 장려하는 정치문화의 토양 위에서 번성하나 종교적 근본주의와 종족적 민족주의는 바로 이러한 정치문화의 소생을 질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이 초래할 수 있는 반민주적 사회의 출현에 대한 경고이다. 세계화로 인해 경제적 지위와 정치적 권력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서구의 비서구에 대한 패권이 강화되면 비서구사회에서는 서구문화, 스타일, 습관에 저항하면서 비서구화를 주장하는 토착엘리트의 부활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Huntington, 1993). 그러나 "문명충돌"은 헌팅턴이 주장하는 것처럼 물질주의적이고 테크노크라틱한 서구문명과 토착문명 간의 충돌이 아니라, 오히려 토착문화집단간의 피비린내 나는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화의 혜택에서 배제된 지역과 집단의 지도자들은 본원적 정체성에 기초하여 집단적 유대를 형성하기 위해 타도해야 할 적을 만들고 대중을 동원한다. 본원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운동은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국민국가를 해체시키고, 그 결과 국민국가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본원적 정체성에 기초한 분리운동은 강렬하다. 본원적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을 자신의 총체적 생활영역을 수호하려는 운동으로 믿기 때문이다. 근대화시대에는 국가가 이러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분파적 행위를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주권이 약화되면서 이러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분파적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새로운 대체 주권이 형성되고 있지 않고 있다. 국민국가적 규범이 보편성을 상실하고 있으나 새로운 보편적 규범은 태어나고 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는 또한 민주주의의 인민주권의 내용에 기본적인 수정을 가하고 있다. 근대 민주주의는 주어진 영토 내에서의 인민의 지배였다. 따라서 인민주권의 개념에는 "인민"(demos)의 요소와 민족 또는 종족(ethnos)의 요소가 결합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민주화란 한편으로는 계급, 성, 세대간의 차이에 관계없이 시민권이 보편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이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비토착민, 이민, 외국인에까지 시민권을 확대하는 과정이었다. 근대민주주의의 "국민주권"의 개념은 종족적 문제를 포용하고 있다. 근대민주국가는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였다. 따라서 종족적 동질성이 시민권의 경계를 규정하지 않았다. 새로운 이주자라도 그가 시민권이 요구하는 문화와 정치적 규칙을 받아들인다면 시민권이 허용되었던 것이다. 한 국가의 회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종족적 동질성이 아니라 시민의 의무와 권리에 대한 규칙을 받아들이느냐였다. "미국과 불란서의 혁명과정에서 형성된 민족주의는 지방적인 종족문화적 다양성을 극복하고 민족에의 충성이 초사회적 충성에 의해 도전받지 않는 표준화된 시민들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였던 것이다"(Robertson, 1990: 49). 민족주의는 문화의 민족화를 통해 동질적인 시민을 만들어 낼 수 있었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공영할 수 있었다.


그런데 노동시장의 국제화, 생태계의 파괴와 정치-군사적 분쟁으로 인해 국제적 인구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면서 "종족"의 문제가 민주주의 논쟁에서 다시금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이래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던 "동질적 시민"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 이주노동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문제가 정치적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협의주의(Consociationalism)를 채택하여 문화적 다원주의를 형성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성공한 예는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에서 발견되지만 이들 나라의 하위문화집단간의 갈등은 토착민들과 이주자들 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미 시민의 자격을 획득한 종족, 종교 언어집단들간에 형성된 것이다. 또한 협의주의적 해결방식은 다양한 문화집단의 인정, 문화집단 지도자의 독점적 대표성, 관용과 타협문화의 형성과 같은 많은 전제조건을 요구한다. 문제는 이주자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러한 전제조건은 충족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Dahl, 1994: 27). 그리고 협의주의가 모든 균열들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해결사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레바논은 협의주의를 채택했지만 문화집단간의 내란을 피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문화집단간의 갈등이 이미 국제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5) "원형감옥" (panopticon)

세계화를 가져온 정보통신혁명이 한편으로는 정보의 흐름을 개방하고 가속화시키는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앙통제기구에 의한 정보의 관리를 강화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핵심인 개인적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정보통신혁명이 정보와 지식을 확산시킴으로써 참여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지만 정보의 관리와 통제의 고도화를 통해 새로운 원형감옥(Panopticon)과 같은 지배체제를 강화할 수도 있다는 점에 주의하여야 한다. 정보통신 혁명이 시민들로 하여금 다양한 정보에의 접근을 가능하게 할 때 정치는 더 이상 보호받는 산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정치인들이 그리고 관료가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권력을 유지해왔던 시대가 지나가고 참여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다. 정보통신 혁명은 정보민주화로 가지 않고 컴퓨터에 의해 감시되는 새로운 전체주의체제를 초래할 수도 있다. 정보통신혁명이 텔레데모크라시를 초래할 수도 있지만 원형감옥을 낳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과 정보화는 국가로 하여금 정보의 흐름을 통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다국적 행위자들이 정보의 흐름에 통제를 받지 않게 됨에 따라 국가는 영토, 인민, 시장에 대한 관할권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초국적 세력은 국민국가의 정치적 공간을 침략하고 정치적 통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통제할 수 없는 초국적 행위자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치가들의 행동에 제약과 한계를 부과함으로써 시민들에 의한 민주적 통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초국가적 행위자들이 인민주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초국적 행위자들은 시장의 규범을 전세계적으로 보편화시키고 거대한 시장이라는 감옥을 전세계적으로 세우고 있다. 우리는 다시 폴라니가 묘사한 자기파괴적 시장사회가 초래할 가공할 모습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시장은 사람을 육체적으로 파괴시키고 사람의 환경을 황무지로 변형시켜버린다. 필연적으로, 사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기 마련이지만 어떤 조치든 시장의 자율조정기능을 손상시키고 산업활동을 해체시켜 사회를 또 다른 위험에 빠뜨린다. 시장체제가 일정한 틀에 맞추어 발달하다가 결국에는 그 바탕인 사회마저 붕괴시키는 것은 바로 이 딜레마 때문이다(Polanyi, 1944: 384).

 

6) 소비문화의 세계화


세계화는 전세계를 단일 시장화하고 있다. 그 결과 이제 "시민"은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부르주아지로 변모하고 있다.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소비제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이 나이키운동화, 폴로 티셔츠, 레이반 선글라스를 소비하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는 세대, 계급과 이데올로기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미국의 빈민층의 흑인아동들이 나이키신발을 신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가하면, 한국의 노인들은 롤렉스시계를 차기 위해 세관의 단속을 피하려 하며, 니카라과의 혁명가 오르테가는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에 왔을 때 디자이너 선글라스를 구입하여 구설수에 올랐다. 시장은 경계가 없고, 글로벌 메디아는 소비주의를 전세계에 전파함으로써 물신주의는 글로벌화하고 있다(Fields, 1994: 10).


물신주의의 글로벌화는 시민의 개념을 해치고있다.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시민은 폴리스의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책임을 지는 시민이었다. 폴리스에 참여하지 않는 시민은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이를 단적으로 표현해준다. 루소는 시민의 사익과 공동체의 공익이 일치할 때 일반의사가 실현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물신주의가 팽배할 때, 공익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의 시민의 개념은 사라지고 발가벗은 자신만의 이기적 사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시장적 인간만이 남게 된다(강정인, 1994, 38-40). 그러나 그러한 시민은 더 이상 시민이 아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바와 같이 사악한 인간들의 자유로운 교환의 결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덕성을 가진 시민들 간의 자유로운 결과로 달성되는 윤리적인 자유주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5. 맺는말


이 글을 통하여 우리는 세계화가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반드시 민주화에 대한 장미빛 미래를 약속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가의 약화, 시장의 강화가 자동적으로 민주주의를 외연적으로 확산시키고 내포적으로 심화시킬 것같지는 않다. 제3세계에서 민영화, 탈규제화, 안정화조치를 통해 시장의 원리를 강화시켰을 때, 경쟁시장은 활력 있고 효율적인 경제를 가져다줄 지는 모르나 이러한 시장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건너야하는 "눈물의 계곡"을 건너는데 드는 비용은 경제적 약자에 부과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드는 비용이 경제적 약자에 부과될 때, 이는 필연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증대시키고, 물질적 복지를 위협받게된 시장경쟁에서 낙오한 자들의 저항운동을 격화시킬 것이며 그 결과 신생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다. 어떤 민주주의도 극심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과 공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도 사정은 그리 양호하지는 않다. 세계화로 기업주권이 인민주권을 사실상 대체하면서 20세기적 성과인 자본과 노동간의 역사적 타협체제를 무너뜨리고 있다. 시장의 변덕, 시장의 횡포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해온 복지제도가 해체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사회적 시민권, 산업 시민권을 박탈당한 채 정치적 시민권만을 가진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분명 서구 민주주의의 후퇴이지 진전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세계화의 도전 하에서 민주주의를 보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화 개념의 확장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민주화의 세계적 물결은 기실 슘페터적인 민주주의의 세계적인 확산에 지나지 않는다. 슘페터는 민주주의를 "인민들의 표를 얻기 위한 경쟁적 투쟁의 수단에 의하여 개인(정치가)들이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획득하게 되는 정치적 결정에 도달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개념화하였다(Schumpeter, 1950: 269). 슘페터는 인민들이 공유하고 있지도 않고 공유하고있더라도 이에 도달할 수 있는 수단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공동선(또는 루소의 일반의사)을 가정하고 민주주의를 이에 도달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개념규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 비판하고 자신의 절차적인 최소한의 정의가 현실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그리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주장하였다.


슘페터의 민주주의 정의는 신자유주의적 국제화론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슘페터의 민주주의 정의 하에서는 인민주권은 인민들이 투표장에서 표를 던지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인민들이 자신들의 표로써 정부를 구성하고 나면 주권은 정치가에 이양된다. 물론 주기적 선거가 정치가들로 하여금 인민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강요하지만 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확립하기에는 미흡하다. "영국인들은 국회의원을 선출할 때에만 자유롭다. 의원이 선출되자마자 인민은 노예화된다"는 루소의 선거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세계화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장미빛 전망은 민주주의를 선거로 환원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슘페터적인 민주주의 하에서는 선거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인 불의, 박탈, 불평등과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슘페터적인 민주주의 정의는 제3세계에서 민주주의를 건설하려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노력을 지원해주려는 선진국사람들 모두를 잘못 인도할 수 있다. 말하자면 단순한 선거과정의 도입만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는 잘못된 기대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Trent, 1994). 따라서 민주주의를 선거과정으로만 인식하는 슘페터적인 민주주의 개념은 확장되고 개선되어야한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선거가 정부로 하여금 인민 대다수의 요구에 반응하도록 강제하는 핵심적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자동적으로 자의적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물질적 안전, 평등, 사회적 정의를 목표로 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다. 민주주의의 개념은 시장적 경쟁의 필연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경제, 사회, 문화적인 불평등을 해소, 보상해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제도적 장치로 확대되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시장경쟁에서 낙오한 자들을 위해서 무언가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을 때만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들이 지키고 발전시켜야할 가치가 있는 정치적 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Przeworski et al., 1993: 188). 오늘날의 세계시간은 확장된 민주주의의 개념과 양립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세계화의 충격을 헤쳐나가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민주주의 개념의 확대와 함께 현실적 차원에서 주권국가의 자율적 정책결정권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고삐풀린 글로벌 금융자본을 통제하고, 국경을 넘어서 확산되고 있는 환경의 파괴, 문화간의 대화, 인권, 관용, 빈곤, 범죄에 관한 보편적 규범을 마련할 수 있는 제도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주권의 일부를 양도하여 '세계정부'를 수립하고 세계정부로 하여금 고삐풀린 글로벌 경제행위자를 규제하고, 환경, 범죄, 마약, 인권, 핵, 대량실업, 대량이민, 인구폭발, 인종분규와 같은 범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위임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물론 세계정부는 자유주의, 대의제, 헌정주의, 그리고 연방주의의 요소를 포함하는 민주적 원리에 의해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Schmitter, 1997: 302). 헬드가 '코스모폴리탄 민주주의' 프로젝트(Held, 1995, 1997)에서 제시하고 있는 기존의 국제기구인 UN의 민주화(안전보장이사회에서의 제3세계 발언권 강화, 유럽의회 모델에 기초한 유엔 상원설립 등), 강제적 사법권을 갖는 국제재판소와 국제인권법원의 설립, EU와 같은 지역통합정부의 장려, 작지만 효율적인 국제군대 창설, 글로벌 의회수립, 권리와 의무에 관한 신헌장제정, 글로벌 법체계 정립, 국민국가의 강압능력의 지역 또는 세계기구로의 영구적인 이전 증대 등을 실현불가능한 대안으로 치부하지 말고, 진지하게 고려해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세계화로 인해 영토국가의 권위와 능력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적 질서의 구축은 국민국가라는 닫힌 정치공동체에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각 주권국가들은 열린 민족주의, 세계주의의 보편적인 규범을 내면화하고 범세계적 수준에서 사회적으로 책임있고 민주적인 정치지배구조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시장경쟁의 결과로 인한 경제, 사회, 문화적인 불평등을 해소, 보상해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제도적 장치로 민주주의의 개념이 확대되고, 권위있는 범세계적인 민주적 정치지배구조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병행될 때 주권국가와 민주주의에 대한 세계화의 위협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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